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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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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록의 마술사 "속기사"

속기의 정의 다른 사람의 말이나 자기의 의사표시를 어떤 특정한 부호문자인 속기문자로 정확하게 빨리 필기하여 이것을 일반문자로 번문하는 활동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속기사를 일컬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 '기록의 마술사'라 칭한다.

속기의 정의

다른 사람의 말이나 자기의 의사표시를 어떤 특정한 부호문자인 속기문자로 정확하게 빨리 필기하여 이것을 일반문자로 번문하는 활동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속기사를 일컬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 '기록의 마술사'라 칭한다.
의회정치의 본산인 영국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사람은 국왕과 국회의장 그리고 재판관과 속기사다' 라는 속언이 있다. 속기문자는 어떠한 음도 1획으로 쓸 수 있게끔 일음일필(一音一筆)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모든 기본문자를 하나의 직선과 곡선인 두 개의 선으로 구성시켜, 그 길이와 각도로 구별하여 써서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속기의 역사

그리고 각 기본 약기법 외에 동사·형용사의 활용 및 약기법의 응용도 겸한다. 보통의 문자보다 4배∼6배 빨리 쓸 수 있으며, 사람의 말속도와 일치하거나 능가할 수 있도록 고안한 특수문자이다. 속기술은 기원전 10세기경 페르샤, 이집트, 헤브루, 그리스등의 고대국가에서 이미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러한 논증은 희박한 실정이고, 어느 정도의 체계를 갖춘 속기법이 창안된 때는 로마의 웅변술이 번성했던 B.C 1세기경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B.C 63년 당시 정치가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머터스 타리아스 시세로(Marcus TulliusCicero)가 원죄로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죄를면하여 각 지방을 유세하고 다닐 때 그의 제자였던 타이로(Tiro)가 로마자의 머리글자와 끝글자를 적당히 약기하는 방법으로 시세로의 연설을 받아 적어 공표하였는데, 타이로의 이 약기법이 속기법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속기법으로는 영국에서는 [피트맨]식과 [테일러]식, [거니]식이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1888년에 발표된 [그레그]식이, 프랑스에서는 1878년 [쁘레보]식을 개량한 [쁘레보 듀로네]식과 1862년에 창안된 [듀플로]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1796년 세이 카이루가 고안하여 1834년 가벨스버거에 의해 완성된 [가벨스버거]식이 널리 사용·보급되고 있다. 동양에 속기가 보급된 것은 1882년 다쿠사리가 [그라함]식을 응용하여 [다쿠사리]식을 고안하여 사용한 것을 기점으로 한다. 우리말 속기의 기원은 다른 구미제국에 비하여 매우 뒤떨어졌다.

그 이유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외부세력의 잦은 침입과 더불어 일찍이 우리의 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자들의 한자우월사상에 따라 그만큼 우리 한글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우리말 속기를 발달사적으로 구분할 때 1945년 8·15해방 이전의 속기를 비실용속기, 그 이후를 실용속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말 속기가 처음으로 창안 발표됐던 때는 미국 이민2세 박여일(朴如日)이라는 사람이 1909년 [조선속기법]을 발표하여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보급하면서부터이다.

한편 국내에서 우리말 속기법이 처음으로 발표된 때는 이로부터 6년이나 지난 1925년에 방익환, 이원상이 공동으로 발표한 [조선어속기술]이다. 우리말 속기의 실상에 대해 1934년판 [일본속기50년사]의 내용중에 "…조선어 속기법을 창시하였다는 보도에 접한 것이 大正9년 6월이었다"는 기록에 나타난 그 속기법이 박여일이 1909년에 창안 발표하였다는 [조선속기법]인지 아니면 또 다른 우리말 속기법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속기인들이 앞으로 계속 조사 연구해 봐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해방후 발표된 속기방식으로는 장기태가 창안한 [일파식], 김천한이 창안한 [고려식], 이동근이 창안한 [동방식], 강준원이 창안한 [서울식], 김세종이 창안한 [세종식], 박 송이 창안한 [한국식], 남상천이 창안한 [남천식], 의회속기법식 연구위원회에서 창안한 [의회식] 등이 있다.

속기사와 사관

오늘날의 정사를 기록하는 속기사를 일컬어 조선조 때 史草를 작성하는 史官에 비유한다. 미국의 [대통령문서록]과 같은 것이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에 만들어진 [승정원일기]등과 같이 것이 있다.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승정원에서 어전회의를 비롯하여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자료로 삼았다.승정원에서 기록을 담당한 사관의 직함은 주서(注書)였고, 주서가 기록한 원본이 오늘날의 속기록과 같은 사초이다. 어전회의에는 반드시 2명의 사관이 입회하여 기록업무를 담당했다.
두명의 사관 중 한명은 회의에서 오고가는 말을 가감없이 직필하고, 다른 한명은 발언자의 언행과 분위기를 기록했다. 조선조 사관의 신분은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그 권한과 임무는 대단했다. 중국의 명나라가 275년, 청나라가 290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정권도 250년에 그친 반면 조선왕조가 519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이와 같은 사관제도에 의한 열린 정치를 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회의는 국회의사당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현대판 史官인 속기사들이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가감없이 기록하여 속기록(速記錄)이라는 문헌으로 발간 보존되는 그 어느 사료(史料)보다 정확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史草이다. 발언자는 누구나 다 속기사와 속기록을 의식하면서 발언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곧 정치인의 자질을 높이는 계기로서 작용함으로써 정치문화는 한 걸음씩 발전해 간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 기록은 역사학자들에겐 사료를, 언론인들에겐 기사거리를, 경제인들에게는 기업경영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문학하는 문필가에게는 작품의 소재(素材)를, 학자들에게는 연구자료를 각각 제공하며 우리 주변의 모든 문화에 영향을 주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속기의 활용과 컴퓨터 속기

현재 속기사를 가장 많이 채용하고 있는 곳은 국회를 비롯하여 지방의회와 법원 등이다. 그 밖에 속기가 활용되는 분야는 취재속기·강의속기·좌담속기·비서속기·녹취속기·저술속기·설교속기·방송속기·군대속기·메모속기·생활속기 등 여러 분야이다.
속기사는 역사를 기록하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속기술과 풍부한 경험, 폭넓은 상식과 명석한두뇌, 문장력 등의 자질과 교양이 필요하다. 컴퓨터를 활용한 속기법이 제대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이다.

즉, 1994년초에 '워드픽쳐(CAS)', '감퓨타', 1996년에 '모아치기'를 내놓으면서 본격화되었다. '워드픽쳐'와 '감퓨타'는 애초부터 키보드의 자판배열이 일반키보드와 다른 독자적 속기용 기계를 지향한 반면 모아치기는 일반 자판배열을 그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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